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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 ①] 탄생 90주년, ‘비디오 아트 선구자’ 백남준

백남준아트센터, 전시회 ‘완벽한 최후의 1초-교향곡 2번’ 오는 6월 19일까지 개최

  • Editor. 김주현
  • 입력 2022.03.25 12:23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문화매거진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문화매거진은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한 문화예술인을 집중 조명하고 그들의 예술이 우리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봅니다. <편집자주>
 

▲ 사진: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사진: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1932년 7월 20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에서 미술사, 미학, 음악학, 작곡을 공부했다. 1956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대와 프라이부르크 음악학교, 쾰른대학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했다.

1958년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를 만나 자신의 인생과 예술세계에 일대 전환을 일으켰다. 이듬해 뒤셀도르프의 갤러리 22에서 데뷔작인 ‘존 케이지에 대한 오마주 Homage a John Cage’를 초연하며, 공연 중 바이올린을 내리쳐 부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는 이 작품을 계기로 평생의 예술적 동지인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 인연을 맺는다.

1960년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습작(Etude for Pianoforte)’를 발표했다. 1961년엔 플럭서스 운동(Fluxus, 1960년대 초~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의 창시자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와 처음 만나 플럭서스의 창립 멤버 가운데 한 명이 되었으며, 이후 요제프 보이스 등과 함께 독일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같은 해 스톡홀름에서 액션뮤직 프로그램으로 ‘심플 Simple’ 퍼포먼스 초연, 쾰른에서 ‘머리를 위한 참선(Zen for Head)’, ‘플라토니크 3번 습작(Etude Platonique No.3)’ 등을 공연했다.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TV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에서 텔레비전 13대와 피아노 3대, 소음기 등을 배치하고 피아노 1대가 요제프 보이스에 의해 파괴되는 퍼포먼스를 시행했다. 이 전시를 시작으로 비디오 아트의 선구적 활동을 전개한 백남준은 1964년 뉴욕에 정착한 후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Sharlotte Mooreman)과 음악, 퍼포먼스, 비디오를 결합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1973년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에서는 존 케이지와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작품을 활용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예술 창작에 대한 정의와 표현의 범위를 확대했다. 1974년 ‘TV 정원(TV Garden)’은 수많은 모니터의 사용을 통해 비디오 설치라는 개념을 도입, 설치 미술 가능성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1979년부터는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교수로 재직하며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82년에는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그의 첫 회고전이 열렸고, 1984년 뉴욕과 파리, 베를린, 서울을 연결하는 최초의 위성중계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1986년 제2편 ‘바이 바이 키플링(Bye Bye Kipling)’, 1988년 제3편 ‘손에 손 잡고(Wrap around the World)’를 연달아 발표했다.

1996년 6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신경이 마비되기도 했으나 장애를 극복하고 국내외에서 도시와 영상전(서울시립미술관, 1996), 교과서 미술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독일 비디오 조각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97바젤국제아트페어(스위스 바젤, 1997), 개인전(미국 국립미국미술관, 1997), 98서울판화미술제(예술의전당 미술관, 1998), 한국현대미술전-시간(호암갤러리, 1998) 등을 열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1996년 10월 독일 ‘포쿠스(Focus)’의 ‘올해의 100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1997년 8월에는 독일 경제 월간지 ‘캐피탈(Capital)’이 선정한 ‘세계의 작가 100인’ 8위에 올랐고, 같은 해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독일 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이 비독일 국민에게 주는 ‘괴테메달’을 받았다. 아울러 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98 교토상’을 수상했으며, 이어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미술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서울 로댕갤러리, 호암갤러리에서 대규모 회고전 ‘백남준의 세계전(The Worlds of NamJune Paik)’이 열렸다. 플럭서스에서 비디오 아트, 이후 레이저 아트까지 끊임없이 도전한 백남준은 2006년 1월 29일(한국시각 1월 30일)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 자택에서 7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의 유해는 서울, 뉴욕, 독일에 나눠서 안치되었으며, 2008년 10월 경기도 용인시에 경기문화재단 산하 백남준아트센터가 개관했다.

▲ 사진: 경기문화재단 제공
▲ 사진: 경기문화재단 제공

올해는 백남준의 탄생 90주년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를 기념한 전시회 ‘완벽한 최후의 1초-교향곡 2번’을 24일부터 오는 6월 19일까지 연다. 

전시회에서는 백남준이 1961년 작곡한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을 국내 최초로 시연한다. 센터 제2전시실에서 진행되는 전시회에서는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의 텍스트 악보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다.

이 교향곡 시연에는 시각 예술가,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사운드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참여할 계획이다. 선우정아, 장기하 등 가수와 배우, 소설가, 연구자 등도 낭독과 글쓰기를 통해 연주에 참여한다.

▲ 백남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ca. 1961) 부분, 피터 벤젤 소장 이미지 / Nam June Paik, Symphony for 20 Rooms (ca. 1961) detail, Peter Wenzel collection
▲ 백남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ca. 1961) 부분, 피터 벤젤 소장 이미지 / Nam June Paik, Symphony for 20 Rooms (ca. 1961) detail, Peter Wenzel collection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은 백남준이 생전 연주한 적은 없으나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과 작업 세계를 반영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분석된다. 일반적인 악보가 오선지로 이뤄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의 악보에는 방으로 추정되는 사각형 모양의 선 위로 음계나 음표의 기능을 대신하는 텍스트만 적혀있다.

백남준은 1962년 쓴 ‘음악의 전시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해당 작품에 대해 “악보를 넘기는 주체, 즉 방을 넘나드는 관객이 저마다 방을 마음대로 옮겨 다니며 다른 소리를 택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관계자는 “이번 전시에서는 여러 주체의 퍼포먼스를 통해 발생하는 소리와 상황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교향곡을 완성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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